Thursday, March 5, 2020

전염병을 피하려 한다면 그것은 믿음 없는 행동일까? 마르틴 루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16세기 종교개혁가의 흑사병에 대한 성찰이 오늘 나와 같은 의학도에게,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에 직면한 중국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중국 우한에서 발원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여행과 경제도 마비시키고 있다. 중국에서만 3,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전 세계 75개국 이상에서 95,000명 넘는 사람들이 감염되었다. 2003년 사스 전염병을 넘는 수치다.

중국의 중심부에 있는 교통의 요지라 미국의 시카고에 비견되는 도시인 우한의 시민들이 정부에 의해 봉쇄되었고, (1월 25일 시작된) 춘절 행사를 포함한 모든 대중 활동이 중지되었다. 우한과 중국 전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명절을 맞아 가족을 만나러 귀향하는 중국인들처럼 할 것인지, 중국 본토에서 피신할 것인지, 심지어 모여서 주일 예배를 드려야 할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어가고 있을 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전염병을 피하려 한다면 그것은 믿음 없는 행동일까?

16세기에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이 신학자 마르틴 루터에게 바로 이런 질문을 했다.

1527년,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와 주변 도시들에 다시 페스트가 찾아왔다. 흑사병이라 불린 페스트의 창궐로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이 목숨을 잃은 지 채 200년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전염병에 걸린 평범한 사람들의 책임에 대해 개혁자 루터는 “죽음의 역병으로부터 피신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루터의 조언은 전염성이 확산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실제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다.

우선, 루터는 다른 사람을 보살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은 피신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리를 지켜야 한다.”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는 힘과 위로가 되어 주고, 죽기 전에 성찬을 베풀어 줄 선한 목자가 필요하다. 시장, 판사 같은 공직자들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리를 지켜야 한다. 시립 병원의 의사, 경찰관 같은 공무원들도 계속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부모와 후견인도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루터는 병자를 보살피는 것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한정하지도 않는다. 병상과 인력이 부족한 우한을 보면, 루터의 이 권고는 특히 더 적절하다. 인구가 1,100만에 이르는 중국의 대표적인 인구 밀집 도시인 우한은 폭증하는 감염자들을 신속하게 진료하기 위해 2개의 병원을 며칠 만에 지었다. 의료 훈련을 받지 않은 평범한 시민들도 환자를 돌볼 수 있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돌보듯이 병자와 부상자를 돌보라고 권고한다(마태복음 25:41-46). 하나님 사랑에서 이웃 사랑의 실천이 나온다.

그러나 루터는 무조건 위험을 감수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그의 편지는 두 가지 필수적 가치, 곧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보살핌이 절실한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 사이에서 쉽게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루터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보호하는 본성을 주셨다고 분명하게 말하며, 우리는 우리 몸을 돌보아야 한다고 확신한다(에베소서 5:29; 고린도전서 12:21-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를 돌보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이 질병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검역과 진찰 같은 공중 의료 조치를 옹호한다. 요컨대,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무지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의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그분은 또한 이 땅의 약들도 베푸셨다.

그래도 전염병을 피하고 싶어 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루터는 이웃이 위급한 상황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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